카테고리 없음 / / 2022. 11. 4. 17:24

영화 <기생충> 정보 및 줄거리 천만관객 돌파

반응형

 

온 가족이 부잣집의 기생충이 되어 가는 과정

2019년 5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문제적 신작 <기생충>은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100년 역사상 첫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천만 영화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무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의 4개 부분에서 수상을 하고, 한국영화 역사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 또한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라고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기택의 가족은 반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2층 아주머니 집의 와이파이가 비번이 생겨서 
인터넷과 카톡을 못할 정도로 가난한 가정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택의 아들 기우는  친구인 민혁이 찾아와서 본인이 하던 부잣집 영어 과외를 맡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기우는 자신의 여동생인 기정의 도움으로 대학 재학 증명서를 위조하고 본인의 기지로 부잣집 영어와 괴를 맡게 됩니다.  아직 대학생이 아니었던 기우는 민혁의 제안을 망설이지만 민혁의 적극적인 권유에 승낙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영교가 막내아들 다송의 미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기정을 유명한 미술선생님으로 속이고 영교에게 소개를 합니다.  기정 또한 치밀한 준비로 다송의 미술선생님이 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밀어내고 기택과 기택의 와이프 충숙이 각각 새로운 운전기사와 가정부로 들어오게 됩니다. 
가족 모두가 취업을 하게 된 덕분에 생활이 넉넉해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죠.
영규의 가족이 다송의 생일 기념으로 캠핑을 떠난 날 기택의 가족은 자리를 비운 부잣집에서 만찬을 즐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 가정부였던 문광이 자신의 짐을 찾아가겠다고 집을 찾아옵니다.  

지하실로 내려간 문광이 긴 시간 동안 올라오지 않자 충숙은 지하실로 내려가 봅니다. 충숙과 기택 가족은 지하실 밑의 문광의 남편 근세가 숨겨진 방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문광이 근세를 돌봐 줄 것을 부탁하지만 충숙은 매몰차게  하지만 충숙 또한 기택 가족이 영교 가족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상황은 역전하게 됩니다.
문광과 근세가 방심한 틈에 기택과 기택 가족은 문광과 근세가 숨겨진 방에 가두고 폭우로 돌아온 영교가족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행히 기택 가족은 영교가족에게 들키지 않고 본인의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음날 영교는 폭우로 캠핑을 하지 못한 다송을 달래기 위해 번개 생일파티를 준비하게 됩니다. 영교의 초대로 기택가족은 다시 영교의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숨겨진 방에서 감금되어 있던 근세는 기택 가족과의 몸싸움에서 사망한 문광을 보고 미쳐버리게 됩니다. 

지하실에서 올라온 근세는 기우를 돌로 치고, 기정을 칼로 찌릅니다. 일에 말려든 충숙은 근세를 꼬챙이로 찌르고 기택은 영교의 남편 동익을 칼로 찌르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택 가족은 모든 범죄행위가 밝혀지게 됩니다.
그리고 기택의 가족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기택은 행방불명이 되고 기정은 죽고 기우와 충숙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납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찾아간 부잣집에서 보이는 전등에서 깜박임을 통해 아직 아버지가 부잣집 지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우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부잣집을 산디 다시 아버지 외 재회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분명히 실컷 웃었는데

1. 수석의 다양한 의미
영화의 초반 기우의 친구가 전해준 수석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기생충에서 수석은 매우 다의적인 메타포이며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수석을 가져오는 민혁은 수석에 대해서 '집안에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온다'라고 설명합니다
수석은 '운과 요행'이라는 상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질서인 자연의 돌에 수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유함으로써 통제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석의 본질은 '평범한 돌'인 것입니다.
영화에서 수석이 가진 돌이라는 본질은 기우가 갖는 인간이라는 본질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평범한 돌이 운 좋게도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기택네 집으로 오게 된 것처럼 기우 역시 운 좋게 선택받아 과외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박사장 네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셈입니다.
기우는 거짓말이라는 요행을 계획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박 사장의 집으로 하나씩 불러 모으게 되고, 비가 내려 반 지하 집에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도 기우는 수석을 끌어안습니다.
기택은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이미 패배감에 젖어 있지만 기우는 여전히 수석이 상징하는 요행과 계획을 끌어안고서 박사장의 집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우가 자신에게 돌이 달라붙는다며, 수석을 끌어안는 장면과 더불어 수석을 들고 지하실로 가는 장면들은 다분히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스토리의 흐름상으로만 봤을 때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장면이지만 이것은 역으로 영화에서 수석이 갖는 상징과 의미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하실로 들어간 기우는 요행인 동시에 계획인 돌을 지하실 바닥으로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행이자 계획인 돌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게 되는 것이죠.
영화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우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다시 반지하로 돌아온 기우의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돌이 다시 자연의 물속으로 돌아가는 장면처럼 기우 역시 반지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죠.
결국 영화 속에서 수석은 요행을 계획으로 삶을 컨트롤해보려던 기우라는 인물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수석과 관련하여 영화 초반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기우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수석은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기우는 또 다른 계획을 편지에 적습니다.
돈을 벌어서 아버지가 계신 집을 살 테니 그저 올라오기만 하시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앞선 계획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계획들은 돌을 수석이라고 부르듯이 자신을 대신할 신분을 만들어 자산가를 숙주로 기생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엔 기우가 스스로 자산가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물의 흐름 속으로 돌이 들어간 장면처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속으로 편승하여 기우 본인이 직접 많은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본 뒤 관객이 느끼는 씁쓸함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입니다.
첫째로 기우의 편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영화상의 기우 역시 세상 그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된다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사회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인디언, 냄새, 모스부호
영화에서 인디언이라는 장치는 박사장 네 아들 다송이 본 귀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송이 그리는 그림들은 모두 지하실의 남자인 근세의 몽타주이며, 다송은 집을 지키기 위해 컵스카우트에서 모스부호를 배웠고 미국에서 만든 인디언 활을 쏘며, 미제 인디언 텐트에서 잠을 잡니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던 원주민들의 저항정신이 정복자인 미국인들에 의해 놀잇감으로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듯이 지하실에서 버튼을 머리로 내리치며 문광의 위독함을 전하려 했던 근세의 절규 섞인 모스부호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정복자에게는 한낱 놀잇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송은 모스부호를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박사장과 기택은 다송의 생일 축하를 위해, 인디언 분장을 합니다.
박사장에게 인디언은 놀이지만 기택에게 인디언은 불편한 업무입니다.
강자에게는 놀이이지만 약자에게는 현실인 것이죠.
인디언은 바로 기택과 같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내몰렸던  미국의 원주민과 같은 약자와 불평등의 상징인 것입니다.
기택이 박사장을 찌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냄새로 자신들을 구분 짓고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혐오를 내비쳤기 때문이지만, 기택이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있었던 연출의 이유에는 기택 역시 진짜 인디언과 같은 약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말에서 근세처럼 지하실에서 지내게 된 기택은 모스부호를 통해 기우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모스부호는 근세와 기택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하류층의 목소리와 메시지들은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도록 이미 사회가 구분되어 있음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3. 기생충의 진짜 의미
영화의 초반 기택은 집안에 꼽등이가 많아졌다며 꼽등이를 손가락으로 튕깁니다
꼽등이는 기생충인 연가시의 대표적인 숙주입니다.
많아진 꼽등이를 박멸하겠다며 소독약을 그대로 집안으로 들이게 되는데 꼽등이가 박멸되었는지는 영화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콜록거리는 기택의 가족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기택을 보여줄 뿐입니다.
스토리는 진행되어 숙주인 박사장 네 집으로 기택일가의 전부가 기생하는데 성공하게  되지만 집사였던 문광이 돌아오면서 박사장네 기생하고 있던 두 집 안 사이에는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다송의 생일날 지하실에서 올라온 근세의 분노는 자연스럽게도 기생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같은 계급인 기택의 가족에게로 향하게 되고, 오늘날의 현실이라도 반영하듯 근세의 칼에는 여성인 기정이 희생되고 맙니다.
근세는 존경하는 박사장에게 리스펙을 외치지만 박사장은 그의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 근세의 몸에 깔린 자신의 차키를 가져갈 뿐입니다.
그런 박사장이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근세에게 보인 모욕적인 태도에서  기택은 근세에게는 동질감을 박사장에게는 혐오와 분노를 느끼고, 박사장을 칼로 찌르게 되고 맙니다.
기택은 영화 속에서 두 번이나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죠?'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유대감과 동질감 찾고자 했지만, 박사장은 정색하면서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하라고 기택과 자신의 상하관계에 있어서 정확히 선을 그어 구분 짓습니다.
박사장은 바로 어젯밤에 아내인 연고를 사랑해서 소파에서 사랑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결국 기택은 근세가 살던 지하실로 기우는 반지하로 돌아옵니다.
기택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 지하에서 살겠다고 하고, 기우는 자신이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기생충의 진짜 의미는 박사장에게 기생하려 했던 두 가족 들은 모습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해버린 기택과 기우의 모습일 것입니다.
거듭된 실패로 무계획이 계획이 되어버린 기택은 패배감에 젖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고, 요행과 거짓으로 계획을 세워 자본가에게서 안락한 기생을 꿈꿨던 기우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많은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숙주인 꼽등이 한 마리를 없애는 것처럼 박사장을 없앤다고 해도 약을 쳐서 벌레를 몰아낸다고 해도 기침소리 한번 내지 않는 기택의 모습처럼, 이 사회에서 기생하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하고 굳건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는 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지금과 같이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시스템에 의해 기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영화는 이사회의 지하에 반쯤 혹은 완전히 파묻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스부호를 해석해주며 끝이 납니다.
편리하고 실용적이지만 양극화와 개인주의를 만들어낸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살고 있는 당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서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이 문제를 공생이 아닌 기생으로 취급해 버린 채 박사장의 일가처럼 간편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게 된다면,  기택네 화장실의 오물이 끓어 넘치듯 뉴스에서 보던 분노에 휩싸인 한낮의 칼부림을 자신의 일로 겪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단순한 미치광이의 광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고민해봐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