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에 대한 정보
감독은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주연은 이반 마사귀(고랭 역), 조리온 에귈레오르(트리 마가시 역), 안토니아 산 후앙(이 모기리 역)
출연자는 에밀리오 부알레(바하랏역), 알렉산드라 마상 카이(미하루 역), 지하라 라나(말리 역)... 등등
영화 장르는 SF/ 스릴러 물이며, 스페인 영화로, 2020년 33회 유럽영화상을 수상했고, 우리나라에는 2020년 5월에 개봉했다.
생존을 위해서
전 세계 각지의 최고급 재료 들을 손질하는 요리사들 생선부터 디저트까지 엄격한 관리하에 완성된 음식들은
한 시설의 수감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입니다. 이 호화로운 수용소는 어떻게 들어가는 것일까요?
주인공 '고렝'은 이 수용소에 첫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렝과 룸메이트는 이곳을 '홀'이라고 불렀습니다.
불친절했지만 선임인 '트리 마가시'병장은 기본적인 룰은 설명해 줬습니다. 수감자들도 위아래로 몇 층이나
있는지 알 수 없는 '홀' 2인 1조로 배정된 층에서 한 달을 지내야 하며 배식은 하루에 한 번 파란불로 바뀌면 가운데 빈 공간으로 자기 부상 플랫폼(=엘베)이 내려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2분' 그런데 엄청난 양의 음식은 딱 보기에도 먹다 남긴 것 같았습니다.
홀의 배식 시스템은 위층이 남긴 것을 아래층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하 48층에 있는 고렝에게 위에 47개 층의 94명이 먹다 남긴 음식이 온 것입니다. 트리 마가시는 게걸스럽게 먹었지만, 고렝은 과일 한 두 개만 챙겨 두었습니다. 2분이 지나자 음식은 다음 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트리 마가시는 굳이 음식을 더럽혀 놓습니다. 그리곤 그들의 층은 엄청나게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도 고렝과 트리 마가시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수감 생활 후에 얻는 것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렝의 경우 6개월 수감 후 학위를 받기로 했는데, 트리 마가시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취침시간을 알리듯 홀은 빨간 불이 켜집니다.
뚫린 통로를 지켜보고 있는 고렝에게 트리마가시는 경고합니다. 밤이 되면 자기 부상 플랫폼은 다시 최상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음날에도 배식은 똑같이 이루어졌는데 '위아래층이 협동해 음식을 나누면 되지 않냐'며 고렝이 제안했지만 트리마가시는 여전히 더러운 짓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왜 홀에
들어오게 됐는지 말해줍니다. 트리마가시는 TV광고를 보다 열받아서 TV를 창 밖으로 던졌고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 맞아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이유로 홀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희망하는 물건을 한 개씩 들고 올 수 있었습니다. 고렝은 책을 트리마가시는 TV광고 속 칼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두려워진 고렝은 트리 마가시에게 질문합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높은 층으로도 음식이 절대 도달했을 리 없는 지하 100층이 넘는 곳으로도 갔단 트리 마가시가 어떻게 한 달을 생존할 수 있었냐는 것입니다.
때마침 식사 시간이 되자 그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플랫폼 위에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트리 마가시는 놀라기는커녕 소개를 해줍니다. 그리곤 먹는 중에 자신이 어떻게 생존했는지 알려 줍니다.
고렝은 내려가는 '미하루'를 쳐다봤고, 플랫폼이 다음 층에 도착하자 49층의 남자들은 미하루를 공격하려 합니다. 고렝은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며 도우려 했는데 미하루는 49층에 둘울 모두 죽이고 다시 플랫폼에 탑승했습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홀'안에서 고렝은 순응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한 달 쯤이 지난 어느 날 방안은 수면 가스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다시 눈을 뜨면 층이 재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아래층은 아니길 바라며 고랭이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둘은 무려 지하 171층으로 배정된 것이었죠. 트리 마가시는 허기에 절어 두 사람이 이성을 잃을 때를 대비해 고렝을 묶은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71층에 도착한 플랫폼에는 음식의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트리 마가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려 합니다. 고렝이 공격당하고 있을 때 마침 플랫폼에선 미하루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숨에 트리 마가시에게 달려들어 고렝을 살려줍니다. 그리곤 171층에 남아 있는 고렝을 도와줍니다. 가까스로 생존한 고렝이 눈을 뜨자 그는 33층에서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시설의 관리자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모 구리에 따르면 이곳은 200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음식만 잘 분배하면 200층의 사람들이 모두 생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플랫폼이 도착하자 접시 위에 음식을 분배하고 난 후에야 먹었습니다. 그마저도 강아지와 나눠 먹는 이모 구리는 플랫폼이 다음 층에 도착하자 아래층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연대를 강조하며 매일매일 음식을 분배하려 했고, 며칠째 듣다 지친 고렝은 아래층 사람들을 협박합니다. 어쨌든 연대가 되기 시작한 상황이었는데 하루는 미하루가 심각하게 다친 상태로 도착합니다. 그녀가 딸을 찾으려 한다는 걸 이모 구리에게 이야기하자 의외의 사실이 드러납니다. 16세 이하의 어린이는 여기 못 들어온다는... 그렇게 다친 미하루를 돌본 날 밤 배고팠던 미하루는 이모 구리의 강아지를 죽이고 맙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결국 의지를 잃은 이모 구리는 자신이 홀에 들어온 이유를 밝힙니다. 3년간 암투병을 했고 더이상 투명이 의미 없어서 사람들을 도우려 지원했다고말입니다. 층이 바뀌는 당일 이모구리는 음식을 손도 대지 않습니다. 고렝이 다시 눈을 떴을대 무려 지하 202층에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모구리는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황이어서 고렝은 죽은 트리 마가시와 이모 구리의 환영을 보며 한 달을 버티는 데 성공합니다. 허기 속에 다시 눈을 뜬 고렝은 무려 6층에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만난 룸메이트는 밧줄을 타고 탈출을 시도하는 '바하랏'이었습니다. 그는 위층 사람들에게 부탁해 탈출할 셈이었는데 의외로 위층 사람들은 밧줄을 잡아 주었고, 바하랏이 마지막 순간에 도음을 요청하자 그를 다시 떨어 뜨립니다.
벌써 수감 4개월째인 고렝은 동요하지 않고 그날 밤 바하랏을 설득합니다. 모든 사람이 최소 이틀에 한 끼를
먹으려면 우선 지하 50층까지는 오늘은 굶겨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나오면 깨버렸습니다.
그리고 내려가던 그들은 바라 핫이 존경하는 현자를 만납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조언을 합니다.
관리자들에게 수감자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 그들은 사람들에게 배식을 하면서도 상징을 담을 디저트만큼은 지켰습니다.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삶을 포기한 사람들도 인간성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한층에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으면 멈추지 않는 플랫폼은 어느새 지하 333층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마지막 층이라고 생각흔 두 사람은 이제 플랫폼이 '0층'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데 침대 아래에는
미하루가 그토록 찾던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리자 플랫폼은 위가 아닌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과연 홀의 마지막은 333층이 맞을지? 이들은 상징이 담긴 디저트를 0층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지?
선택이 주어진다면
더 플랫폼은 열린 결말을 선택한 다소 답답한 면이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 분석하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잔혹함의 정도도 꽤 높은 영화입니다. 인물, 설정, 이야기는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운데 후반부로 갈수록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대사와 물건, 인물이 나오면서 단순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온갖 의문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신기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영화는 숫자로부터 신학적인 의미가 담긴 상징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를 활용해 영화가 최종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고렝과 이모 구리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홀의 마지막 지하층은 33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꿔 말해 한층에 두 명 총 666명이 있는 것입니다.
서구권의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666은 신학에서 악마의 숫자, 즉 홀이 지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333은 재미있게도 천사, 혹은 천사의 메시지 등으로 불리는 숫자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계획을 실천 중 333을 보게 된다면 계획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천사의 메시지인 것이죠. 세로 감옥의 관리자들이 있을 가능 가장 높은 층이 아닌 가장 아래층인 333층이 천사의 메시지라는 데에도 시청자가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이 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오릅니다.
커티스와 꼬리칸의 사람들이 음식과 부유함으로 가득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처럼 세로 감옥 속 모든 사람들은 위로 올라 가려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설국열차보다 더 지독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홀의 수감자들은 자신 외에 다른 332명 재소자를 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위층이라는 권력이 주어지면 탐욕과 무자비를 끝없이 보여 주고 낮은 층으로 향하면 무기력하게 당합니다.
한 가지 맹점은 이들에게는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으로 도착하는 음식의 양을 보면 알 겁니다.
절대 두 사람이 2분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욕심을 줄이고 생존할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한 뒤 하루 또는 이틀을 버티면 수감 기간 동안 모두가 무사히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명백한 사실과 분명 위. 아래층이 소통이 가능상황에서도 시스템 안에서 높은 층이라는 권력이 주어지면 놀랍게도 아래층 사람들의 상황은 자신과 무관하게 됩니다. 바뀌 말해 세로 감옥은 우리 사회를, 플랫폼은 자본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세로 감옥의 직원으로 있었던 이모 구리의 무지함입니다. 그녀는 세로 감옥이 몇 층짜리 인지도 몰랐고 16세 미만의 소녀가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관리자들 조차 정작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캐릭터입니다. 관리자들은 합리성과 이성만 있다면 잘 굴러갈 시스템이라고 계산했겠지만 그 안의 구성원들이 허기와 불균등 앞에서 비합리와 비이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계산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결국 설국열차, 기생충, 더 플랫폼과 같은 영화들은 다른 서사 속에서도 메시지는 한결같습니다.